한국고대근동학회를 시작하고 학회지와 소식지 역할을 맡을 노트를 일 년에 네 번 발간하자는 계획을 세웠는데 드디어 네 번째 노트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 말은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글 스무 편을 계속 썼다는 뜻이며, 그것을 돌려 읽으며 서로 수정과 교정을 했다는 뜻이고, 또 전문 편집인과 출판인이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책자를 완성했다는 뜻이다. 일 년 전에는 이런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학회 회원들과 독지가들의 응원과 후원으로 여기에 이를 수 있었다. 누구 한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그렇게 했다 해도 의미가 없었을 텐데, 여러 사람이 마음을 모아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다.
이번 호에서 김아리 박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전 건물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건축의 특징 이면에 숨어 있는 고대인들의 생각을 읽어내고 있다. 유성환 박사는 피라미드로 유명한 고왕국 시대에 이집트인들이 제작한 왕실의 인물상을 설명하며 예술적 방식의 특징과 다양한 상징들을 설명한다. 윤성덕 박사는 지난 호에 이어 ⟨샤마쉬 찬양시⟩를 번역하고 주석하며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혜문학의 한 측면을 열어 보여준다. 주원준 박사는 ⟨아트라하시스 이야기⟩를 번역하고 주석하는데, 이번에는 인간을 창조하는 장면을 세세히 묘사하며 다양한 표현의 의미와 문학적 특징을 설명한다. 김구원 박사는 마티 프리드먼의 ⟪알레포 코덱스⟫라는 책을 소개하며, 고대의 성서 필사본이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체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그리고 상업적 이득을 얻는 방편으로 변했음을 지적한다.
⟪한국고대근동학 노트⟫가 앞으로도 알맹이가 가득 찬 글을 계속 싣고, 필자를 확대해 더 다양한 시각을 담을 수 있다면 좋겠다. 어디 쌓여 있거나 컴퓨터 안에 저장된 상태로 잊히지 않고 돌려 읽으며 질문을 제기하고 토론하는 자료가 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노트를 가운데 놓고 진행하는 공부 모임이나 토론 모임도 생기면 좋겠다. 이런 꿈을 꾸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고대 문명에 관해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교유하는 관계의 출발점에 ⟪한국고대근동학 노트⟫가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 ⟪한국고대근동학 노트⟫ 제4호를 펴내며 — 편집위원장 윤성덕 · 3
[ 특별 연재 ]
▪ 고대근동의 신전 — 김아리 · 6
▪ 고대 이집트의 예술 ④: 왕실 인물상 — 유성환 · 17
▪ 바빌리 사람들의 지혜 ④: 샤마쉬 찬양시 ② — 윤성덕 · 30
▪ 아트라하시스 이야기 ④ — 주원준 · 46
[ 고대근동학 리뷰 ]
▪ 사람보다 거룩한 성서, 성서보다 거룩한 돈 — 김구원 · 60
마티 프리드먼, ⟪알레포 코덱스⟫ 서평
학회 신간 안내 · 69
학회 가입 안내 · 70
올해도 벌써 반이 지나갔다. 작년에 고대근동학과 관련해 발표된 연구서들을 살펴보니 참으로 다양하다. 고고학 발굴 보고서나 이를 기초로 한 연구서 외에도 창조 신화나 서기들의 문화사, 의술과 의술의 여신들, 동물과 관련된 인류학 또는 종교학 연구, 슈메르어 종교 문서, 우가릿의 종교와 제의, 말하기와 문자의 관계, 고바빌리 시대 악카드어 찬양시, 악카드어 저주문, 요청하거나 기도할 때 쓰는 악카드어 표현, 고악카드/고바빌리 방언 악카드어 문법, 계산과 계량법, 철기 시대 국제무역, 심지어 아나톨리아 역사와 지리를 연구한 책까지 발간되었다. 다들 열심히 살고 계시다.
⟪한국고대근동학 노트⟫ 제3호도 알찬 글들로 풍성하다. 주원준 박사는 ⟨아트라하시스 이야기⟩를 계속 들려준다. 신들만 살던 시절, 젊고 지위 낮은 신들이 심한 노동에 시달렸는데 결국 참지 못하고 엔릴 신의 집에 항의하러 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현명한 중재자 누스쿠 신이 있어 양측 사이를 오가며 의사소통을 책임진다. 덕분에 창조 신화처럼 신들의 전쟁이 벌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었고 인류도 탄생하게 된다.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세계를 운영하는 큰 신들이 왕이나 왕실을 상징한다면 이런 중재자 이미지는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다.
윤성덕 박사는 바빌리 지혜를 탐구하며 ⟨샤마쉬 찬양시⟩를 소개한다. 태양신 샤마쉬는 원래 가장 높은 서열의 신들에 속하지 않는데 이 시는 그를 신들의 왕이요 전지전능한 자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이 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감춘 것을 드러내는 자라고 덧붙이면서, 지혜문학 특유의 문맥 속으로 천천히 진입한다. 결국 바빌리 사람들이 생각하는 지혜가 무엇인지 조금씩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유성환 박사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상징인 ‘피라미드’를 소개한다. 마스타바에서 계단식 피라미드로, 굴절 피라미드와 붉은 피라미드로, 거대한 쿠푸의 대 피라미드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피라미드로 계속 변화하는 모습을 상세히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 개입한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변수와 결과로 발생한 문화적 현상도 빠짐없이 알 수 있다. 글 한 편에 고대인들의 생활과 사상을 꼼꼼히 담아내는 능력은 어느 신의 축복일까?
김아리 박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건축물 가운데 제일 눈에 띄는 ‘지구라트’에 관해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그 위용을 자랑하며 든든히 서 있는 우르의 지구라트와 성서 본문, 우리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는 바벨탑에 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알찬 기회다. 이 신전 탑은 고바빌리 시대 왕들부터 신에게 지어 바쳤다고 자랑하는 말들을 남기기 시작했는데, 과연 왕궁과 신전 사이에서 지구라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사뭇 궁금하다.
김구원 박사는 얀 아스만의 ⟪문화적 기억과 고대 문명⟫에 관한 서평을 마무리한다. 고대 이집트 문명이 시각 상징을 사용한 점,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신이 매개하는 ‘연결적 정의’를 토대로 역사를 서술한 점,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이 이집트 식으로 시작해 메소포타미아 식으로 전통을 발전시키며 고통 속에서 역사를 서술했고 그것을 경전화시키고 해석했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유럽 학자 특유의 도식화 시도가 장점이지만 또 단점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든다.◼
▪ ⟪한국고대근동학 노트⟫ 제3호를 펴내며 — 편집위원장 윤성덕 · 3
[ 특별 연재 ]
▪ 고대근동의 지구라트 — 김아리 · 7
▪ 고대 이집트의 예술 ③: 피라미드와 마스타바 — 유성환 · 17
▪ 바빌리 사람들의 지혜 ③: 샤마쉬 찬양시 — 윤성덕 · 39
▪ 아트라하시스 이야기 ③ — 주원준 · 59
[ 고대근동학 리뷰 ]
▪ 인류 문명의 문화적 기억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② — 김구원 · 76
얀 아스만, ⟪문화적 기억과 고대 문명⟫ 서평
학회 가입 안내 · 84
봄이 오는가 싶더니 찬바람이 불고 며칠 비가 내리면서 모두 다 빗물에 흘러내려 가는 것 같다. 우리도 함께 흘러가 어디선가 만났으면 좋겠다.
이번 호에서 김아리 박사는 메소포타미아 미술사 안에서 처음으로 역사의 한 장면을 주제로 삼았던 ‘독수리 석비’를 소개한다. 이 유물은 수메르 시대에 움마와 라가쉬라는 도시국가가 서로 무기를 들고 전쟁하던 모습을 담고 있다. 용감하게 행진하는 군인들의 모습은 그들 발밑에 밟히는 적군들의 모습과 분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이 석비에 조각된 장면들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예술이라기보다는 정치인들의 선전을 전달하는 수단에 가깝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승리한 주인공의 눈으로 작품을 감상하곤 하는데, 가끔은 실패한 자들의 눈길을 만나면서 깜짝 놀라게 된다.
유성환 박사는 이집트 미술사 초기를 대표하는 ‘나르메르 화장판’을 소개한다. 전통 복식과 백색관과 적색관을 갖춘 파라오가 적들과 싸우고 전쟁터를 시찰하는 모습, 목이 긴 서포파드와 황소, 그리고 이집트 신들이 기준선을 따라 구분한 틀 속에서 이미지 서사를 구현하고 있다. 유성환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묘사들이 질서정연한 배치, 완전한 형태, 인물의 상대적 크기, 정해진 몸짓, 형상과 성각문자의 조화라는 원리를 통해 신성한 왕권을 표현한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 예술가들이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창작한 작품들을 따라가면 서쪽 낙원에서 편히 쉬고 계시는 파라오들을 만날 수 있을까?
윤성덕 박사는 바빌리 사람들의 지혜문학 작품들 중 ⟨세탁부와 손님의 대화⟩를 소개한다. 인류 최초의 진상 손님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잔소리를 하면서 자기 옷을 빨아 오라던 손님은 수고비는 아주 적게 주겠다고 하면서 협상을 요구한다. 그러자 세탁부는 단칼에 거절하면서 그런 빨래라면 직접 하시라고 쏘아붙인다. 그러나 이 간단한 줄거리 안에 엄청나게 복잡한 전문용어들이 들어가고 학식이 높은 척하던 손님과 세탁부의 입장이 뒤바뀌면서 누가 지혜자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이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자리에서 이들을 만나고 싶다.
주원준 박사는 드디어 ⟨아타라하시스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신들이 사람처럼 노동을 하고 진흙 바구니를 옮기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큰 신들은 일을 감독하고 젊은 신들은 수로를 파고 농사를 짓느라 한숨을 쉬어댔다. 성능 좋은 기계도, 힘을 덜어줄 자동차나 중장비도 없던 신들이 불평할 만도 했다. 아주 자세한 주석과 해설 덕분에 마치 5000년 전에 살던 농부들을 만나 그 고충을 직접 듣는 것 같다.
김구원 박사는 얀 아스만(Jan Assmann)이 쓴 ⟪문화적 기억과 고대 문명⟫이라는 책을 소개한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대학자가 자신의 연구 전체를 요약이라도 하려는 듯 복잡한 역사를 해석할 큰 틀을 제시한다. 아스만은 어떤 사회의 기억을 보전하고 전달하는 기억 문화와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이 되는 기록 문화를 설명하면서, 어떤 사회가 의도적으로 현재에 맞게 해석한 과거를 기억하고 그 가치를 규정함으로써 사회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권력관계를 강화한다고 말한다. 이는 역사를 기호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고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들었던 이론이기도 한데, 어쩌면 고대사를 나름대로 해석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저자를 만난 느낌이 든다.◼
▪ ⟪한국고대근동학 노트⟫ 제2호를 펴내며 — 편집위원장 윤성덕 · 3
[ 특별 연재 ]
▪ 역사 서사적 미술의 시작: 독수리 석비 — 김아리 · 7
▪ 고대 이집트의 예술 ②: 나르메르 화장판 — 유성환 · 15
▪ 바빌리 사람들의 지혜 ②: 세탁부와 손님의 대화 — 윤성덕 · 41
▪ 아트라하시스 이야기 ② — 주원준 · 53
[ 고대근동학 리뷰 ]
▪ 인류 문명의 문화적 기억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① — 김구원 · 62
얀 아스만, ⟪문화적 기억과 고대 문명⟫ 서평
학회 신간 안내 · 70
학회 가입 안내 · 71
지난 6년간의 시간을 돌아보면 감사와 기쁨의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한국의 대학과 교회는 고대근동학에 대해 지금도 무지(無知)하다. 고대근동학과가 설치된 대학은 한 곳도 없고 교양 차원에서 고대근동학을 개설하는 곳도 손에 꼽는다. 성경은 고대근동 세계에서 탄생했지만 대부분의 신학교에서도 고대근동 문명을 깊이 가르치지 않는다. 그 결과 대부분의 한국 지성인들은 학창 시절에 고대근동학을 거의 접하지 못했고, 지성의 공백을 심각한 문제로 느끼지도 못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만큼 고대근동학자들은 쓸쓸했다.
한국의 고대근동학자들은 스스로 2016년 첫 모임을 갖고 작은 발걸음을 시작했다. 대학이 아닌 작은 공간을 얻어 공동 강연회를 열었다.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고대근동 이야기”라는 강연 제목은 한국의 지성을 향한 외침이기도 했다. 공동 강연회는 정식 학술 발표회로 이어졌다. 2016년에서 2021년까지 모두 7회의 학술발표회를 진행하면서 한국고대근동학회는 뜻밖에 큰 수확을 얻었다.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논의에 참여할 만한 학자들을 보유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서로 우정과 신뢰를 나누었고, 공부하는 기쁨과 인격적 존경의 마음도 교류할 수 있었다. 우리 사이에는 나아가면서 길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퍼져나갔다.
결국 2022년에 한국고대근동학회(KANES)가 정식 출범했고, 정기 학술대회를 두 차례나 치렀다. 우리는 정기 학술대회에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다. 발표자와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충분히 오랫동안 발표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첫 모임을 시작한 지 7년째에 ⟪한국고대근동학 노트⟫를 발행하게 되었다. ‘일곱’은 고대근동 세계에서 보편적 길수(吉數)이니 어떤 섭리도 느껴진다. 그동안 많은 분이 귀한 도움을 주셨다.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우리는 학회지에도 새로운 형식을 모색하고 과감하게 채택했다. 디지털 시대에 지성인들과 더 쉽고 넓게 공유하는 형식의 학회지를 고민하면서 전면 디지털 출판 형식으로 학회지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한국고대근동학 노트⟫는 인류 최초의 언어, 문학, 역사, 예술, 종교, 기술, 법 등을 한국의 지성계에 공급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한국고대근동학 노트⟫는 고대근동학에 대한 한국의 무지와 미몽(迷夢)을 몰아내는 등불이 될 것이다. 이곳에 실린 글들은 한국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내용과 수준으로 채워질 것이다. 부디 이 작은 노력이 한국의 지성계에 작은 울림을 주고 깨우침을 얻는 계기가 된다면 더없이 기쁘겠다. 또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고대근동학을 공부하거나 관심 있는 분들의 적극적 참여를 기대한다.◼
고대근동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공부하는 모임 그리고 대중과 함께하는 모임을 목표로 내걸고 만나온 것이 벌써 몇 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같은 관심을 가진 분들이 함께 모여서 옛날 옛적에 있었던 일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뿐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강의라고 찾아와 들어준 고마운 분들도 많이 생겼다.
그런데 그동안에는 각자 사정에 따라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도 있고 모임에 좀 뜸하게 나타나는 분도 있었다. 그만큼 구속력이 없고 자유롭게 살았던 셈이다. 그러나 드디어 작년에 ‘한국고대근동학회’라는 이름과 함께 공식적인 학회가 출범했고, 이제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할 것만 같다.
공부하는 사람들과 그 결과를 누릴 대중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공동체가 되기로 했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혼자 방구석에 앉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하던 상태를 벗어나 응원하며 기대하는 분들에게 새롭고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보여드릴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학회 회원이 되어주신 분들은 이제 학회를 통해 좀 더 깊고 방대한 고대근동 세계를 탐구할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다.
⟪한국고대근동학 노트⟫는 그런 새 마음가짐을 드러내는 첫걸음이다. 서로 더 자주 더 치열하게 다가서면서 더 다양하고 더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생기기를 바란다. 일방적으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으로 편을 가르지 말고, 서로 찬성하고 반대하고 토론하고 대화하며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새 이야기들이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고 사람이 모이면서 우리가 모르던 우리를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일단 창간호는 연재 네 편과 고대근동학 관련 서평 한 편으로 시작한다.
먼저 김아리 박사는 ⟨메소포타미아 미술 이야기⟩를 들려준다. 위대한 왕들의 전쟁 이야기에 지쳤다면, 아름다운 미술품들 뒤에 숨은 이야기를 통해 사랑을 회복해보자. 아직 선사시대에 속하는 신석기시대 나투프 문화의 유물들 중에는 아름다운 돌과 뼈와 조개로 만든 장신구들이 남아 있다. 주로 무덤에서 나온 껴묻거리인데 상당히 발달한 기술과 미적인 감각이 돋보인다. 이런 장신구를 착용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장신구는 사회적 지위나 권위와도 관련이 있었을까? 남자는 여자와 장신구를 사용하는 방법이 달랐을까?
유성환 박사는 ⟨고대 이집트의 예술⟩을 역사의 흐름에 따라 설명해준다. 특히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고유한 양식과 예술 규범’에 따라 작품을 만들었고, 이런 기준 덕분에 고대 이집트는 균질성과 연속성을 유지한 고유한 문화로 존속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런 태도는 현대인이 가진 예술관과 매우 다른데 그러면 고대 이집트의 미술이나 조각 작품은 의미를 전달하는 역할만 한 것일까?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상상했던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은 어떤 것이었을까?
윤성덕 박사는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은 바빌리 사람들의 지혜문학 작품들을 새로 번역하고 그 작품과 관련된 논의들을 소개한다. 창간호에는 ⟨주인과 종의 대화⟩라는 작품을 소개하는데 고대 바빌리 사람들이 살았던 생활상을 주제로 그 의미를 논의하는 것이 주제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는 보람과 그 결과가 헛됨을 동시에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두 가지 의견 사이에 서서 망설이게 된다. 이 작품은 철학적인 회의주의를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생을 풍자하며 농담을 하는 것일까?
주원준 박사는 악카드어 홍수 서사시 ⟨아트라하시스 이야기⟩를 소개한다. 인류를 지구상에서 멸망시키려는 엔릴 신과 그들을 동정하는 에아 신 사이에서 주인공 아트라하시스가 분투하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진진하며 최초의 슈퍼 히어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엔릴 신이 신들의 왕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줄거리는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홍수의 영웅 아트라하시스는 정말 영생을 얻었을까?
김구원 박사는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진리를 어떻게 추구했는가⟩라는 제목으로 마크 반 드 미에룹이 지은 ⟪그리스인들 이전의 철학: 고대 바빌로니아의 진리 추구⟫에 대한 서평을 실었다. 서양의 문화와 학문 전통에 익숙한 우리는 개별적인 진리를 수집하여 분류하고 해석을 시도하는 메소포타미아 학자들의 활동이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 의미를 추론하는 작업은 고도의 지성을 요구한다. 또한 이런 지식을 기초로 현실 세계에서 경험할 수 없는 추상적인 사고까지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체계적이고 추상적인 사고가 지성을 판단하는 유일한 잣대일까?
글을 곱씹으면서 또 다른 질문을 떠올려보고 조촐한 식탁에 둘러앉아 치열하게 묻고 답할 시간을 그려본다.◼
▪ 한국고대근동학회를 설립하며 — 초대회장 주원준 · 3
▪ 한국고대근동학회 창립 선언문 · 5
▪ 한국고대근동학회 로고 · 6
▪ 한국고대근동학회가 걸어온 길 · 7
▪ ⟪한국고대근동학 노트⟫ 창간호를 펴내며 — 편집위원장 윤성덕 · 10
[ 특별 연재 ]
▪ 메소포타미아 미술 이야기 ①: 나투프 문화 — 김아리 · 14
▪ 고대 이집트의 예술 ① — 유성환 · 26
▪ 바빌리 사람들의 지혜: 어떤 주인과 종의 대화 — 윤성덕 · 43
▪ 아트라하시스 이야기 ① — 주원준 · 57
[고대근동학 리뷰]
▪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진리를 어떻게 추구했는가 — 김구원 · 70
_마크 반 드 미에룹, ⟪그리스인들 이전의 철학: 고대 바빌로니아의 진리 추구⟫ 서평
학회 신간 안내 · 79
학회 가입 안내 · 81